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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도제

한자명 十道制
설명 995년(성종 14)에 전국에 10도를 설치한 일.
상세 설명 [개설] 당나라 태종(太宗)이 산천의 형편에 따라 관내(關內)·하남(河南)·하동(河東)·하북(河北)·산남(山南)·농우(隴右)·회남(淮南)·강남(江南)·검남(劍南)·영남(嶺南)의 10도를 정한 것을 본받아 995년(성종 14)에 지리적 조건을 고려해 관내·중원(中原)·하남·강남·영남(嶺南)·영동(嶺東)·산남·해양(海陽)·삭방(朔方)·패서(浿西)의 10도를 설치하였다. [내용 및 변천] 당나라의 10도는 일시에 제정된 것이 아니고, 종래부터 관용되어오던 지리적 구분을 중심으로 마련된 것이다. 또한 임시로 설치한 주·부(州府)의 수가 많아 전국을 크게 10도로 구분해 통치의 편의를 꾀한 것이었다. 그러나 고려는 삭방·패서·중원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995년에 그 명칭이 동시에 제정된 것이고, 대개 1, 2주 또는 4주의 소관(所管)으로서 1도를 구성하였다. 『고려사』 지리지와 『고려사절요』에 의하면, 관내도는 양주(楊州)·광주(廣州)·황주(黃州)·해주(海州) 등의 29주 82현, 중원도는 충주(忠州)·청주(淸州) 등의 13주 42현, 하남도는 공주(公州)·운주(運州) 등의 11주 34현, 강남도는 전주(全州)·영주(瀛州)·순주(淳州)·마주(馬州) 등 9주 43현, 영남도는 상주(尙州) 등 12주 48현, 영동도는 경주(慶州)·김주(金州) 등 9주 35현을 각각 소관하였다. 그리고 산남도는 진주(晋州) 등 10주 37현을, 해양도는 나주(羅州)·광주(光州)·정주(靜州)·승주(昇州)·패주(貝州)·담주(潭州)·낭주(朗州) 등 14주 62현을, 패서도는 14주 4현·7진(鎭)을 두어 10도는 총 128주 449현 7진을 소관하였다. 그러나 현재 그 수 만큼 확인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각 주에는 등급에 따라 5도호부사(都護府使)·12절도사(節度使)·7도단련사(都團練使)·11단련사(團練使)·21방어사(防禦使)·15자사(刺史)가 설치되었다. 지방관제의 최고단위로서의 도제는 995년 9월 10도의 제정에서 비롯된다는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10도제의 많은 문제점은 그 성격에 대한 학설상의 논란을 가져왔다. 즉, 지방관제의 최고단위였으나 행정구획이 아닌 순찰 또는 감찰구획에 불과해 상주하는 장관은 없고 필요한 경우 수시로 중앙관을 파견해 그 구역을 순찰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리고, 도제의 실시 이후에도 지방행정은 당나라의 생소한 도제보다 한국사회에 익숙해온 중요한 12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면서, 10도제가 오랫동안 존속하지 못한 이유를 여기에서 찾는 견해가 있다. 아울러 10도제 자체는 곧 소멸하지만 지방관제의 최고단위로서 일단 수용된 도제는 종래의 주 중심의 지방관제와 절충하면서 새로운 모습의 도제로 전환되어간다고 하였다. 한편, 10도의 경우, 북방의 진을 제외하면 도 밑에는 주(州)·현(縣)만이 설치된 셈인데, 그것은 중앙에서 지방관이 파견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구분해 주는 기준으로, 128개의 주는 북방의 진과 함께 지방관이 파견된 곳이고, 현은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고 주의 통제를 받는 후대의 이른바 속현(屬縣)이라 하였다. 또한 도의 장관을 관찰사(觀察使)로 보고 관할지역을 관찰사가 순찰했다고 하였다. 그러다가 1005년(목종 8) 도단련사·단련사·자사 등과 함께 관찰사가 없어짐으로써 10도라는 행정구획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 5도호부와 12군절도사만이 남아 이것이 방백(方伯)과 같은 성격을 띠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에 반해 당나라 말기의 관찰사는 절도사와 단련사 사이의 외관으로서 당나라의 절도사 체제를 채용한 고려에서 관찰사를 10도의 장관으로 보는 것은 부당하며, 전운사(轉運使)를 10도의 장관으로 보고 전운사가 없어지는 1029년(현종 20)까지 10도제가 존속했을 것이라는 견해도 제시되었다. 아울러 10도가 전국적인 지리적 구획이며, 장관인 전운사가 행정적으로 조부(租賦)를 전운하고, 백성의 소송을 청리(聽理)했지만, 10도는 중앙정부와 주군 사이의 행정구획이 아니라 단지 조부 전운의 방면을 표시하고, 지방순찰의 구획일 뿐, 지방행정의 중심이 된 것은 어디까지나 주현의 외관들이었다고 하였다. 더구나 1018년에 4도호·8목·56지주군사·28진장·20현령의 외관제가 성립된 뒤에는 주군과 유리된 10도의 의의는 더욱 감소되고, 마침내 현종 말년에 가서는 폐치되고 말았다고 하였다. 한편, 995년에 확정한 10도의 소관 128주·449현·7진 등은 외관 파견 여부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신라시대 주·군·현 중에서 당시까지 재편성 또는 신설한 주·현·진의 수를 총칭한 것이며, 절도사가 도 장관으로서 도를 전제(專制)하고 출척을 집행했고, 절도사가 폐지되는 현종 3년(1012)에 10도 역시 모두 혁파되었다고 하였다. 대신 5도호·75도안무사의 과도기를 거쳐 결국 안찰사제도로 넘어가게 되었다고 한 학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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